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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특이한 문화

필리핀의 ‘수직 매장’ – 관을 절벽에 매다는 장례 풍습

by 숨숨니 2025. 5. 29.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조차 못한 방식으로 죽음을 기리는 문화가 존재한다. 이번에는 필리핀의 수직매장에 대해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땅 깊숙이 시신을 묻고, 어떤 곳에서는 불로 태워 하늘로 올려보낸다. 그러나 필리핀 루손섬의 한 부족은 그 어떤 방식보다도 극적이고 인상적인 장례 풍습을 선택했다. 바로 절벽 중턱에 나무관을 매다는 ‘수직 매장’이다.

이 장례 방식은 단순한 지역 전통을 넘어서,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죽은 자는 땅속이 아닌, 하늘과 가까운 바위 절벽에 머무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는 단순한 미신이 아닌, 고대부터 이어진 세계관과 조상 숭배, 자연과의 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힌 상징 체계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필리핀 북부 산악지대에서 전해지는 이 독특한 장례 풍습을 살펴보며, 죽음과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을 가질 기회를 맞이한다. ‘죽음의 절벽’ 위에서 영혼은 어떻게 떠나는가? 그리고 그 절벽 아래에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기억을 간직하는가?

필리핀의 ‘수직 매장’ – 관을 절벽에 매다는 장례 풍습
필리핀의 ‘수직 매장’ – 관을 절벽에 매다는 장례 풍습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영혼의 여정


 인류는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기리는 방식에서 그 사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영혼의 여정을 알려드릴게요. 매장은 단순한 육체의 안식처를 찾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여정을 도우며,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를 영속시키는 문화적 행위다. 특히 죽은 이가 하늘로 가까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전 세계 여러 문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필리핀 루손섬 북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사가다(Sagada) 지역의 전통 장례 방식은 그 상징성을 극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손꼽힌다.

이곳에서는 고인을 땅속이나 무덤에 묻는 대신, 절벽의 바위벽에 관을 매달거나 끼워 넣는 수직 매장(垂直埋葬, Hanging Coffins) 전통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절벽 위에 매달린 관들은 산과 하늘 사이를 부유하는 듯한 형상을 가지며,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독특한 철학을 품고 있다. 오늘날 관광지로 알려진 이 장례 풍습은 단순한 볼거리 그 이상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기억이 응축된 장소이며, 죽음을 신성하게 여기는 한 문화의 정수가 담겨 있는 전통이다.

 

절벽을 무덤 삼다 – 사가다족의 장례 철학


 사가다 지역을 중심으로 수 세기 이상 이어져 온 수직 매장은 이곳 고산 부족의 삶의 방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가다족의 장례철학으로 절벽을 무덤에 삼고 있다. 사가다족은 죽음을 단절이 아닌 전이(轉移)로 보며, 사후 세계는 산 자의 세계와 접해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시신이 가능한 한 하늘에 가까운 곳, 산의 높은 절벽에 있어야 영혼이 더 쉽게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단순한 신화적 상징이 아니라, 고인의 사후 여정에 대한 진지한 배려로 나타난다.

관은 대개 지역에서 자란 나무로 직접 제작되며, 장례 전에 고인의 생애를 기리는 의식이 거행된다. 의식에서는 고인의 업적, 성격, 남긴 유산 등이 구술로 전해지며, 이는 집단 기억의 일부로 흡수된다. 이후 여러 명의 부족 남성들이 협력하여 무거운 관을 절벽 중턱으로 옮기고, 바위벽에 고정하거나 매다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때 관을 끼우거나 매다는 위치는 고인의 지위, 가족의 영향력, 그리고 물리적인 지형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이 전통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 일부 관에서는 고인이 웅크린 자세로 안치되는데, 이는 인간이 태어날 때와 같은 자세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삶과 죽음이 하나의 순환이라는 믿음을 상징한다. 죽음을 새로운 시작으로 여기는 사가다족의 철학이 이러한 형식 속에 녹아 있는 셈이다.

 

풍습과 관광 사이 – 전통의 위기와 적응


 이 문화는 풍습과 관광의 사이로 들어간다. 전통의 위기와 적응이 낳은 것이다. 사가다의 수직 매장 풍습은 오랫동안 외부인의 시선 밖에 놓여 있었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외국인 탐험가들과 인류학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수많은 사진가와 관광객들이 바위에 매달린 관을 보기 위해 이 지역을 찾기 시작했고, 오늘날 사가다는 ‘죽음의 미학’을 보여주는 독특한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전통을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우선,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일부 절벽 매장지가 훼손되거나, 무단 접근에 의해 손상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고인을 기리기 위한 신성한 공간이 일부 방문객에게는 단순한 이국적 풍경으로 소비되며, 지역 공동체 내부에서도 상실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더욱이 기독교화와 현대 교육의 확산으로 인해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이 전통을 미신적이거나 비위생적인 관습으로 보는 시각도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많은 가족들이 고인을 현대식 무덤이나 화장 방식으로 모시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몇몇 지역 원로들은 수직 매장의 가치를 재조명하며, 이를 교육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 박물관에서는 모형 관과 함께 장례 의식의 의미를 설명하는 전시를 마련하고, 관광객에게 전통의 존중을 요청하는 안내판을 설치하기도 했다. 또한, 지역 가이드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사가다의 문화유산을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론도 함께 다뤄진다.

이처럼 수직 매장은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도 변화하며 살아 있는 의례의 한 형태로 남아 있다. 그것은 단지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정체성과 자연에 대한 경외,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을 통합한 상징체계인 것이다.